100연사 링크용 3

by 원인치쾌변 | 2009/02/15 11:41 | FX-38 | 트랙백 | 덧글(0)

100연사 링크용 2

by 원인치쾌변 | 2009/02/15 10:58 | FX-38 | 트랙백 | 덧글(0)

100연사 링크용

by 원인치쾌변 | 2009/02/15 10:56 | FX-38 | 트랙백 | 덧글(0)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1

군대를 가기전. .

 

대학교를 휴학하고 나서.

 

굉장히 힘들었던 것이기억난다.

 

 

군대를 가기전엔 아버지란 사람이 있었다.

군대를 가기 2년전, 아버지는 사기를 당해 전세금을 전부 날렸다.

 

그덕분에. 그당시나는 대학을 휴학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채 집이 풍지박살 나는지도 모르고 멍하니있다가

 

오히려 부모님만 원망했다. 그리고 내가 양보했던 모든것이 너무나 아깝고 슬프고

그리고 분했다. 그런 느낌 밖에 그당시는 들지않았다.

 

우리형은 3수(정확히는 2수 편입) 이다. 고등학교때 붙은 대학이 근처 전문대학이라

(그것도 급성 1년제 였다) 졸업하자마자 형은 재수를 시작했다. 그때도 우리집은

형편이 좋지않던 시절이었다.

 

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형은 재수를 하면서 집에 있는 돈을 쓰게 되었고(또한 부모님이 지원했다)

이미 대학교 등록금과 형 재수비를 감당할 상태가 아닌 완전 포화중인 상태였다

 

그리고 나도 고등학교를 가기때문에 여러.. 용돈이라던가 여러가지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형이 재수를 하는 바람에 나의 용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친구들이 놀렸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날 놀렸지만 무지 불쾌했다. 불쾌한건

놀려서가 아니고. 서러워서 였다.

 

고등학교때 나는 정말 500원의 사나이였다.

 

그저 500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용돈 이란 개념은 없었다.

 

 

학원 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몇번은 다녔었다. 빠지기도 많이했고)

즉. 상황은 점점 악화 된것이었다.

 

결국 난 고등학교 2학년때 학원에 가겠다고 때를 쓰고 겨우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비를 내기 위해 적금이 깨졌다는 소릴 들었다. (. ..  이건 확실하지않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어 그만두기로했다.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에 컴퓨터를 공부했다.

(원래 나는 이공계 지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웹디자인이 목표였다.)

 

정작 힘든건 고2때가 아니었다. 형이 재수해서 인하공업전문대학에 합격하였다.

그것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전자계산기과) 였다. 그리하여 형의 등록금을 대기위해

나의 용돈은 고3 때도 하루 500원이었다. 그것도 내가 500원을 달라는걸 깜빡하면

못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형은 재수를 거처 대학 그리고 대학을 휴학한 후에

 

2달? 3달? 간 놀았다. 아르바이트는 커녕.. 리니지1에 미쳐 피시방에서 매일같이

놀다 오는게 일과였다. 그건 뭐....군대 가기전이었으니까.

 

그리고 형이 군대 간후에, 집은 '풍지박살'이났다.

 

나도 어떻게 지금에 다니는 대학에 합격하여 다니고 있다.

형이 군대 간 덕에 집에 자금이 좀 남아있어서 인지

(도대체 형은 용돈을 얼마나 받고 다니길래. 군대갔다고해서

돈이 모인다는 건가.. 한참 고민했다.)

 

내 대학 등록금 1학기는 아버지가 마련했다. 처음에는 대출을 받는다 어쩐다 하더니

사장한테 가불 받았단다..

그러고나서 대학교를 가려고하니 학교버스를 타야 되었다. (고속버스) 그당시

고속버스를 운행하여 통학가능하게 한 학교가 그 학교가 처음이었다. (원조란 이야기)

 

통학비만 그 때에 10만원 + 차비 4만원 이었다. 즉.. 한달에 14만원이 고스란히 깨졌다.

 

거기에 밥값과 내 용돈을 제하니

난 한달에 20만원 가까이 쓰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계산은 20만원이지만

실은 그것보다 적었다. 한달에 2만원 가량 썼다. 정말 그당시에는 아무것도하지않고

바로 집에 오기가 일쑤였다. 그만큼 난 주머니가 넉넉하지않았다.

 

그 2만원 조차 모았다. 모아서 미니게임기를 사거나. 아니면 컴퓨터 부품을

사거나 했다.

 

여름방학에는 난생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실은 중딩때도 신문배달을 하였는데.. 한달하고 퍼졌다..)

첫 출발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남웨이터(?)였다. 일본에서 처음 건너온

패밀리 레스토랑은 막 사업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였다. 이마트 안에

스카이락 이라는(SKYLARK ??)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지금의 배니건스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좋다. 대신 셀러드 바 같은게 없다고 보면된다.

 

그 스테이크 같은것이 철판에 나오기 때문에 무거워서 여자 웨이트리스 들은

잘 들지 못해 남웨이터를 따로 뽑는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참 남녀차별이 심한 직업이기도 했다..?)

 

영주라고 하는 고등학교 친구와 같이 시작했는데, 시간대가 달라서

내가 추가근무를 하지않는 이상 그녀석하곤 그다지 말하진 못했다.

 

그리고 같은 나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민경이란 여자애가 있었다.

 

나랑은 그다지 친하진 않았지만.. 같은 나이란 이유로 세명이 자주 뭉치게

되었다. (또는 자주 대화를 하거나 . )

 

그때도 유난히 영주 녀석이 같이 가자고 꼬시곤 했다.

현재 영주는 민경이와 사귀고 있다.

그런 이유였던 거지.

 

그리고 그 알바할때 주방쪽에 엄청 재수없는 여자애가 있었다..

나중에 다같이 회식할때 술먹고 진짜 싸웠다.. 엄청나게 말다툼을..

 

그런데 그애가 그후로 굉장히 잘해줬다. - -; 너무 꼬장부렸나.

 

이 아르바이트는 무지하게 시급이 쌌다. 시간당 2200원이었다.

그것도 6시간 이상은 안된다고 정규 시간은 6시간이다. 그리고 추가 시간당

2500원으로 쳐준다고 했다.

 

.. 이게 2002년도 이야기다. 지금 현역 대학교 3학년인 애들이 나랑 4년 차이나니

욘석들이 그때는 중딩이었다는 거다. 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하게 차이나는데도 요것들이 한번 까불면 정신을 못차린다.

.. 형좀 위해줘라. 형 힘들다.

 

그렇게 번 돈은 잘 모았다가.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바꿨다. 그 당시 내 컴퓨터는

팬티엄3 800Mhz 였다. 투알라틴은 아닌.. 그 전코어 네임이다. 기억이 잘안난다.

난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열심히 했었는데 3D카드가 없어 게임이 느려지기 일쑤였다.

그당시 지포스 MX440 이란 모델이 무지 싸게 나왔다. (3만원이었다) 그것을 사서

끼니 엄청 빨라졌다.. 내친김에 512M 램도 하나더 장착했다. 그때 당시 램은

128M 였는데. 512를 끼니 완전 날라다녔다.. (훗날 이 컴으로 리니지2까지 돌렸었다)

 

그렇게 업글을 하고 즐겁게 대학 생활을 하나 했는데, 2학기 들어서 집주인이

잠적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즉.. 전세금을 가지고 날랐다는 거다.

 

쫌 큰 2층집에서 살던 나는 2학년 1학기가 끝나자 난데없이 월세방으로

쫓기듯 이사갔다.내방은 고시원 방 만하게변했고 집은 반지하였다. 다행히도 그다지

나쁜 집은 아니었지만 옆집에 사는 술취한 아저씨가 매일매일

술에 취해 하는 욕소리가 크게 들려 우리집까지 들린다.

 

엄니는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버지란 사람은 그것에 대해

아무말도 안하였다. 하다못해 조금도 항의하지않았다.....

 

그건 나로선 너무 화가나는일이다.

 

너무 화가나서 옆집문을 열고 아저씨에게 욕을 하며 조용히하라고 한적이 있다.

 

그후 크게 싸움이 나서 아버지가 나오고 난리가 났었던 적이있다.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집주인과 이야기가 잘되어 조용히 있게 되고

 

그리고 그집은 결국 방을 내놓고 나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란 사람은 일자리를 잃은지 한참되었고..

결국 엄니가 벌어오는 적은 월급으로 집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나도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말 뼈빠지게 고생하고

버는돈은 60이하였다.

 

그돈으로 라그나로크 계정비를 하거나 전기세를 내거나 세금을 내거나 했다.

인터넷요금도 냈다. 대부분은 엄니가 냈다만.. 그리고 형이 휴가올 때

휴가때쓰라고 엄니가 주는 돈 역시

 

'내 돈이었다.' 엄니가 몇만원만 꿔달라기에 줬더니... 그런거였다.

 

그렇게, 형이 전역을 하게 되었다.

 

형이 전역을 하고 나는 다시 알바를 하러가고

군대가기 3달전에 모두 그만두고 쉬었다.

 

나도 3달간은 좀 쉬다 가고싶었다 ㅡㅡ..

 

이때 알게 모르게 큰이모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특히 일본어를 전공한다기에

큰이모도 일본어를 배웠던 사람이라 동질감도 많이 느끼고 조카라기 보다

후배같은 느낌이 들었나보다. 금전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셨다.

아직까지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 살만해지자(이건 나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황과 같이 만화를 그렸다. 그 것이 바로

 

'오버히트' 였다.

 

-----계속

by 원인치쾌변 | 2009/01/09 01:17 | 아무도몰랐던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끄적끄적.

그냥.. 내가 살아오면서 왜그리 힘들까에 대한..

 

반성을 하고자 여짓 살아온 것을 끄적거려본다.

 

이건.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다.

 

나의 극소수. (실제 1촌) 만 알고 흘러갔던 시간들의 흔적들...

 

잊어버리기전에 한번쯤은 정리하여 쓰고싶었다..

 

이건 정말 나의 개인적인 글이므로. 욕을 하든 악플을 달든 마음대로 해도좋다.

 

다만.. 이건 실제로 있던 것만 쓰는 것이므로 의심하든 뭘하든 상관없다....

 

이 글은 싸이블로그 뿐만 아닌.. 내 지인들이 휴식하는 장소

(티스토리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에도 같이 올릴 예정이다..)

 

그럼... 시작해보자.

================================================================================

 

현재 나의 상황.

 

내 가족은 엄니 형 나.. 이렇게 3가족이다.

 

현재로썬 무지하게 힘들게 살아간다. (내 관점에서는..)

 

 

엄니.

있는 고생 없는 고생 찾아서 하신다.. (라고 쓰면 좀 불쾌할 표현이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그렇다.) 애들 키우는 게 전부였던..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평범한

대한민국 어머니.. 2007년도에 겨우 개인파산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어떻게

면제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된 금융 계좌는전혀 없이.. 내명의로 된 통장을 사용

중이신 엄니다. 그나마 천만원인 월세 보증금을 면제 받아 현재 자기 명의로

월세집을 갖고계신다.. 그곳에 내가 살고있다. 월 30만원의 월세비와 전기, 수도, 식대

역시 엄니가 부담한다. 그전까진 형과 같이 부담했었다.

난 막 전역했을 때라 자금도없고. 학교 복학이 제일 큰 목표였기에 부담에서

제외되었지만 너무 눈치보였다. 현재도 계속..... 그것은 무한.

 

철이 조금 늦게 든 형이다. 얌전하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있어 어렸을때

형에게 많이 혼나거나 깨졌었다. 여전하다. 군대가기전까지 형은 철이 없었다.

군대갔다온후 몇달간은 별 차이없었지만.. 내가 전역했을 무렵 형은 꽤나 어른이

되어있었다.. 꽤나 라기보단 완전한 어른이다. 사회생활도 어느정도 정착되어있었다

단점은 돈을 모을 수 없었다 는 환경에 처한 것 뿐이었다. 현재

DAUM 커뮤니케이션즈 검색관련 팀에서 일하고있다.

 

모자라고 헛점투성이다. 참 싸가지없게 살아왔다. 이제야 좀 요령을 터득했지만

어렸을때는 무지하게 ...... . . . 나에 대해선 계속 써나아 가겠다.

 

 

현재 나는 3가지 측면에서 고생하고 있다.

 

첫번째는 일본 유학에 관해서다.

위에 읽어보면 쉽게 알겠지만 .. 난 지금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동안 벌었던것이 거의다 끝나가기 때문이다.

흥청망청 써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흥청망청 안쓴것도 아니니

 

거기다 가장 골치아픈게 원래 예정대로라면 4학년때 취업을 생각하여 짠

점수트리(스킬트리?) 였지만.. 어찌하야 일본 교환학생에 발탁되버려,

 

'팔자에도 없는' 일본 유학을 가게 된것이다.

 

누가보면 '얼씨구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니거든.

 

사정이란게 없는 무덤은 없지않은가?..

내가 돈벌어서 모아둔 돈들은 다 4학년 1학기를 기점으로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예상되었을 시점에서 돈을 더 벌어서 비축한다는건 이미 불가능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4학년때는 취업을 나가자! 하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모든학기 21학점을

쑤셔 박았던것이다(우리대학교는 한학기 21학점이 최대 수강점수다)

하지만 여러 변수가 (광식이, 핸드폰, 술값, 이사비용, 피아노 등) 생기는 바람에 정말

힘들게 (그리고 광식의 도움으로) 4학년 1학기에 돈이 고갈되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쪼금) 좀 빨리 돈이 고갈되게 된것이다.

 

현재 내 통장잔고는 11000원이다. ㅡㅡ;;;;

 

그리고 지갑에 들어있는돈은 약 7만원 가량. 돈이란게 최대한 아끼자 라고 생각하면

쓸 일이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10만원 이하 상황에서 절대 쓰지말자고 눈을 부릅떳다.

 

하지만

 

그후로 2일후

 

내 키보드의 7번 숫자키가 망가졌다. (오른쪽 키패드가 아닌 위쪽)

평소 위쪽 키패드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던 나이기에 (위쪽 키패드를 능숙히 사용하면

의외로 문서나, 엑셀작업시에 유용하다)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 던파를 하도 하다보니 이미 X키와 S키등은.. 지워져갔다.

 

이걸 일본에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우 맙소사..

 어차피 하나 사야할 예정이긴 했다.

 

결국 15000원을 쓰게 된다. ㅡㅡ;

 

거기에 핸드폰비가 자동이체되버렸다. ... 결국 잔액은 6만원 이하..

 

생활비도 바닥인지라. ATM기기에서 돈을 5만원 출금.. 결국 1만원 잔고라는거다.

 

ㅋㅋㅋㅋㅋㅋ.... 복학하기 전엔 저것의 600배가 있었는데 말야? ㅋㅋㅋ

 

아르바이트는 물론 하고있다. 이놈도 안구해지는줄 알았다가 겨우 구했다.

 

방학기간 하는 아르바이트는 정말 구하기 힘들다. 시급이 싸거나.

근무시간이 안좋아 기피하는 아르바이트 역시 재학중 방학기간만 하는 사람에겐

기회가 많지않다.

 

오래 일할꺼라 뻥치면 되지않냐? 하고 묻는다면..

 

요즘 왠만한대도 이력서를 써오라는게 정석이다.

 

이력서를 쓰면, 자신이 재학중인지 휴학중인지 금새 확인된다. 그것을 거짓으로

쓴다면.. 고용주는 월급을 지급하지않아도 법적 제제를 받기 힘들다.

즉.. 재수없음 월급이고뭐고 쫓겨난다는 것이다. ㅋㅋㅋ

 

이력서 허위기재는 징계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되고 심하게는 회사가 위계에

의한 영업방해죄로 소송을 할수도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월급은 대략 한달 100만원 안팍이다. 이정도도 방학기간 재학생알바로는

감지덕지다. 더좋은건 많겠지만 그건 자기가 그 알바에 합격되었을 때 일이다.

 

그냥 써져있는 것만으로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그런곳에는 정말 가기힘들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일본 유학시에 군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예상 확보 군자금은

 대략 500쯤.... 예상하지만 실제론400도 힘들꺼라 생각중이다 ㅡㅡ;;

 

그런데.. 광식이도 있고 가기전에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돈도 들터인데

과연 400도 가능할까.. 걱정만 되어간다.

 

형과 엄니에겐 손벌릴수없다. 그들의 사정은 내가 가장 잘알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난 할 수 없다... 그건.. 너무 잔인하다.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는 큰이모께도 역시 손벌릴수없다. . ..

 

광식이역시 말하지않아도 안돼.

 

될까 안될까 걱정하기보단 될꺼라 생각해라. 라고 군대 화장실에서 얼핏본 명언이

기억난다. 하지만  .. 난 명언따위 거의 맞지않는다고 본다.

 

이를 악물고 여전히 바닥을 달리는 내 통장잔고를 정말 마지막 밑바닥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2번째로는 3월달에. 나는. 가능할까.

현재 듣기로는 일본 출국날자가 3월 말로 내정되있다고 흘려들었다.

어차피 3월 수업을 듣나 마나(난 다른 교양수업을 들을 필요가없다. 다 채웠다)

출석인정은 안될것으로 보인다.(점수에 영향을 끼치지않을것) 즉..

 

'학교에 오지않아도 될것이다.'

 

약간의 잔머리를 굴리자면 이 3월달도 할 수 있는 만큼 아르바이트를 해둘까

생각중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역시 교수님들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없다.

 

정교수님이야.. 내 사정을 정말 잘 알고계시니.. 쉽게 허락해 주실꺼라 믿지만

마교수님과 다른 교양교수들... + 외국인 교수들.. 이 제일 문제다.

 

마교수님과 연계된 교양 교수님들이야 마교수님한테만 설득시키면 나머진

문제없이 끝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인 교수다.

 

.... 고통스러운 3월이 될것같다.

 

3번째, 일본에서. 나는. 과연.

난 일본에 나간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그 쉽다는 제주도

조차 가본 역사가 없다. 애초에 여행도 그다지 안좋아하기 때문에 접한 적이 없다.

 

일본에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할 것이다.

구하기가 쉽지않을 것 같다. 거기에 언어의 장벽도 만만치않다.

 

나의 일본 출국날에 큰이모도 같이 간다고 한다. (큰이모님은.. 젊었을때 일본에서

살면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그 때 친했던 일본인이나, 한국인이지만

일본사람과 결혼한 이들과 친분이있다) 거기에 친구분중 내가 갈 곳인 사이타마에

사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충격적이었다) 큰이모 말로는...

 

'친구가 잘대해줄것' 이라곤 하지만.. 여짓 얼굴 한번 본적없는 분이 날 살갑게 대해

주진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일본인인 친구분 남편분은.. 날 골치거리로 여길지도 모른다..

 

또다시 큰이모님 말로는.

'그 이모부께서 아르바이트도 좀 알아봐주시지 않겠니?' 라 하셨다....

 

이것역시..

'그럴리있나!' 라는 생각이다. ㅋㅋㅋ.. 나란놈은 참..

 

물론 말씀하신게 전부다 사실이라면

'오우 마이갓 땡큐 매리마치 유어웰컴 아임 파인땡큐' 겠지만 말이다......

 

일전에 다시 큰이모님께 물으니

'기대는 하지말것' 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역시 예상대로였다는 것이다. 예상대로였기에 놀라진않았다.

 

다만 눈앞이 캄캄해져 오는걸 억지로 라이트로 비추는 것 외엔.

 

우주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지금 이 순간에는 내 눈앞에 전부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항상 도와주시는 큰이모님께 감사한다...

 

 

눈앞에 암흑물질들이 떠나가지않아서.. 난 계속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

'태...태양이 보이지않아..... !' 라고.

 

끌끌.

by 원인치쾌변 | 2009/01/08 01:19 | 아무도몰랐던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